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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10일간의 기록

by 정보 줍는중 2025. 7. 21.

매년 5월이 오면,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떠올립니다. 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되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사건에 대해 들어보셨겠지만, 그 배경과 처절했던 열흘간의 과정,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의미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픈 역사일수록 외면해서는 안 되며, 올바르게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은 1980년 5월,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했던 광주의 열흘간의 기록을 차분히 따라가며, 우리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지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배경과 원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커지던 '서울의 봄'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2월 12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신군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억압하기 위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이 조치로 전국의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정치 활동이 전면 금지되었으며, 김대중, 김영삼 등 민주 인사들이 체포되었습니다. 5월 18일, 광주 지역의 학생들은 이러한 신군부의 폭압적인 조치에 항의하며 시위를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열흘간의 처절했던 항쟁 (주요 전개 과정)

학생들의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된 항쟁은,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계엄군의 폭력에 맞서 일반 시민들이 합세하며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의 주요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날짜 주요 사건
5월 18일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학생들과 계엄군의 첫 충돌. 계엄군의 과잉 진압 시작.
5월 19일~20일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폭력에 분노한 일반 시민들이 시위에 대거 참여하며 항쟁 확산.
5월 21일 계엄군이 옛 전남도청 앞에서 시위대를 향해 집단 발포.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스스로 무장하여 '시민군'을 조직하고 저항.
5월 22일~26일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일시 철수. 시민들은 자치적으로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며 '해방 광주'를 이룸.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워 광주 시내로 재진입(상무충정작전).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항쟁은 비극적으로 막을 내림.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남긴 것 (의의와 영향)

비록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군부의 총칼 아래 비극적으로 진압되었지만, 그 정신과 의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불의한 국가 권력에 맞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항거한 위대한 시민 항쟁으로 평가받습니다.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희생과 저항 정신은 1980년대 내내 민주화 운동의 동력이 되었고, 마침내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이는 5.18이 대한민국만의 역사를 넘어, 인류가 보편적으로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자산임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는 의미입니다.



Q. 5.18은 왜 '폭동'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으로 불리나요?

A. 사건 초기 신군부 정권은 자신들의 집권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를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동'으로 왜곡하고 폄훼했습니다. 하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진상규명 노력이 이어졌고, 국회 청문회와 검찰 수사를 통해 신군부의 불법적인 권력 찬탈과 시민 학살의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결과, 1997년 대법원은 이를 '불법적인 국가 권력에 맞선 정당한 행위'로 판결했으며, 현재는 법적으로 '5.18 민주화운동'으로 명명하여 그 역사적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Q. 5.18 관련 기록물이나 장소는 어디서 접할 수 있나요?

A.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 방문하시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당시의 기록물들을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희생자들이 잠들어 계신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며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Q. '님을 위한 행진곡'은 어떤 노래인가요?

A. '님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2년에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이후 5.18 추모식의 상징적인 노래가 되었으며,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불리는 민중가요가 되었습니다.

5월의 광주를 기억하는 우리의 자세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평범한 시민들의 위대한 저항의 기록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수많은 이들의 고귀한 희생 위에 서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당신에게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이 역사가 미래 세대에게 올바르게 전달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기억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 담긴 민주, 인권,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련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찾아보고, 국립 5.18 민주묘지를 한번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할 때, 역사는 비로소 살아있는 교훈이 됩니다.